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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속기획>3.1독립운동 이전과 이후...일본 내 시각의 변화'의병'으로 불리우다 '독립군'으로 불리게 된 시기의 전환점....3.1 운동의 커다란 변환점
  • 성미연 기자
  • 승인 2021.03.01 04:24
  • 댓글 1
사형 집행 2일 전의 안중근 의사 모습

사형 2일 전, 두 명의 동생과 신부에게 유언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눈물 흘리는 두 명의 동생에게 안중근 의사는 "슬퍼하지마라. 조국과 민중을 위해 모든걸 바친것이니 무엇이 슬프겠는가"라고 전했다고 한다.

( 보충설명 :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당시 러시아 관할이었던 하얼빈 역에서 이토우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저격한 후 뤼순감옥에 수감되어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 받은 후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했다. 위 사진은 사형집행 2일 전으로 1910년 3월 24일에 촬영됐다.)

 

안중근 의사 호송 마차

안중근 의사를 호송하고 있는 마차

(보충설명 : 하얼빈 역에서 히토우 히로부미 저격 후 체포되어 호송되고 있는 사진인지, 사형집행장으로 호송되고 있는 사진인지 자료 어디에도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저격 당하기 직전의 이토우 히로부미((伊藤博文) 의 모습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린 이토우 히로부미(伊藤博文). 기차에서 내린 직후 사살 당했다.

 

일장기 걸린 경복궁 : '동경조일신문(東京朝日新聞) 1910년 8월 24일 자에 실린 사진'

 경복궁(왕궁) 근정전에 걸린 일장기 '합병'과 동시에 일본은 조선각지에 일본의 국기를 게양했다.

 

체포당한 의병 지도자

체포 당한 의병 지도자.

혹독한 탄압으로 1910년 이후 의병의 투쟁은 수그러들었으나 근본적으로 근절되진 않았으며 많은 이들이 북쪽의 국경지역으로 옮겨 새로운 투쟁방식을 취했다. 1914년에는 의병 지도자 체포에 현상금까지 걸렸었다고 한다. 그는 1915년 경천에서 체포당해 처형 당했다.

 

독립운동 선언문

일본에 소개된 3.1 독립 운동의 외침과 독립운동 선언문

 

3.1운동 만세를 외치는 군중

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 서울 중심가의 종로에서 (윗사진)

종로에서 데모행진을 하는 여학생들 (아래사진)

 

3.1 독립 운동 만세 행진을 응원하는 시민들

독립운동 데모행진을 응원하는 서울 광화문기념비각전에 모인 시민들

 

3.1 독립 만세 운동과 유관순 열사의 사진

서울 동대문을 메운 사람들(윗사진) 사진과 유관순 열사의 사진(윗 줄 가장 오른쪽)

유관순과 친구들 - 15세의 소녀였던 유관순은 서울에서부터 선언문을 가지고 고향 충청남도 천안으로 돌아가 교회, 학교 등에서 3.1운동의 참가를 외치며 집회 데모의 선두에 나섰다. 유관순의 부모님 모두 운동 중에 살해 당했으며 그녀 자신도 체포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고문 당하다 옥사했다. 유관순은 당시 무명의 영웅으로 상징적 존재였으며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고문 당해 피범벅인 상태로 숨진 3.1 운동 참가자

독립만세를 외치는 여인의 팔을 절단해 버린 그림.

가혹한 탄압 - 3.1독립운동의 탄압은 어이없게도 데모 참가자의 사살이나 고문이 당연하게 행하여 졌다. 특히 지방의 수원, 제암리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 불질러 죽이는 등 끔찍한 탄압이 많았다.

조선의 자료에 의하면 3월 부터 5월 까지 약 7500여 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3.1 운동 후 처형 당한 독립군 시체들

위의 사진들은 일시와 장소에 대해 단정할 수 없으나 조선의 독립운동에 맞서 일본이 저지른 처형으로  3.1 독립운동 또는 그 전후의 시기로 보여지며 조선 각지와 만주에서 행하여 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보충설명 : 일본의 시각은 3.1 운동 이전의 독립군은 의병으로, 3.1 운동 이후에는 확실하게 독립군으로 인식하며 '독립군'으로 명칭 자체가 바뀌었음을 일본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 사진 해설 : かじむら ひでき(카지므라 히데끼) 동경대학문학부 동양사학과졸업- 조선 근대·현대사 전공

주요 저서로 ‘조선의 자본주의 형성과 전개’ , ‘조선 통일의 태동’ , ‘백범일지’ , ‘조선근대사’ 등을 출간했다.

▲ 자료출처 :  寫眞記錄  日本の侵略 : 中國.朝鮮 (ほるぷ 出版 : 1983년 8월 15일)

번역 : 성미연

 

 

 

 

성미연 기자  miyeun85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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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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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鶴山 2021-03-22 00:21:19

    사진자료를 올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면을 많이 차지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고맙습니다.
    일본어 표기에 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문제가 있는 외국어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장음 표기를 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음표기를 할 경우, '오'의 장음이 일본어에서는 'う'로 표기되지만 그것은 오의 장음이므로 우리말로 표기할 때는 '오'로 표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토우 히로부미'가 아니라 '이토오 히로부미'로 표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지므라'는 '가지무라'여야 할 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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